평소보다한산한 병원 로비(연합뉴스 자료사진)
외출 자제 속 다중시설 매출 '뚝'…온라인 쇼핑 증가
'병원 가기 겁난다'…병원 외래환자 줄고 예약도 취소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김경윤 채새롬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공포가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속함에 따라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등 국민 생활이 극도로 위축된 분위기다.
백화점과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은 손님의 발길이 줄었고 거리는 한산해졌다. 동네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싶으면 학교에 휴업을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거나 거쳐 간 병원은 직격탄을 맞았다. 병원이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로 각인된 만큼 다른 병원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
◇ 외출 자제 분위기로 달라진 도심 풍경
보건 당국은 아직 지역사회 감염 사례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을 달래기는 역부족이다.
시민들은 회사나 학교 등으로 출퇴근 또는 등하교하는 경우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홍대입구역, 합정역, 상수역 인근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에서도 인파가 눈에 띄게 줄었다.
평소 같으면 10m 이상 길게 대기자 줄이 늘어서는 유명 식당에도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거리에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두 아이를 키우는 양민정(39·여) 씨는 "메르스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급적 가려고 하지 않는다"며 "마트에서 장보기도 겁이 난다"고 말했다.
한산해진 도심과 고속도로 상황, 대중교통 이용량 감소가 시민들의 외출 기피 현상을 증명한다.
남산 1·2·3호 터널의 교통량이 지난 14일 11만662대로, 메르스 우려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달 31일보다 11.3% 감소했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이용객 수는 최근 2주 사이 21.9%나 급감했다.
메르스확산에 지하철까지 '조용'(연합뉴스 자료사진)
운수업에 종사하는 최모(41)씨는 "한낮에는 도로에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평소 1시간 걸리는 거리도 최소 10분 이상 빨리 도착한다"고 말했다.
교통량 감소는 교통사고 감소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교통사고 건수가 5월 일평균 57.6건에서 6월에는 일평균 40.2건으로 30.2%나 줄었다.
◇ 다중이용 시설에 발길 '뚝'…매출도 '뚝뚝'
메르스 감염 우려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 시설에 발길이 끊기고 있다. 생필품을 사야 할 경우 온라인으로 쇼핑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놀이공원 입장객도 6월 첫째 주에만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4% 감소하고, 영화 관객도 54.9% 줄었다.
6월 첫째 주 백화점 매출액은 작년 동기대비 16.5% 감소했다. 6월 첫째 주 음식점에서 사용한 카드 결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줄었다.
반면 집에서 컴퓨터로 장을 보는 '온라인 장보기'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온라인 이마트몰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3.1%나 급증했다. 주로 간편가정식, 신선식품, 가공식품에서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졌다. 홈플러스 온라인 마트와 롯데마트 온라인 마트의 매출도 각각 48.1%, 26.8% 증가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이모(27)씨는 "퇴근이 늦어 대형마트에 갈 수밖에 없는데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돼 장을 본지 2주가 넘었다"며 "친구들과 모임도 자연스레 적게 하게 되고 배달음식을 어쩔 수 없이 찾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회식이나 모임이 뜸해지거나 미뤄지고,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등에도 사람들이 참석하기를 꺼리고 있다.
대기업 계열 전자회사에 다니는 장제헌(34)씨는 "연수원에서 사내 교육을 받다가 메르스로 취소돼 중간에 복귀했다"며 "부서 회식도 잘 안하고, 한다면 간단히 1차만 하고 끝난다"고 전했다.
◇ '학교에 안보낼 수도 없고…' 학부모 불안, 온라인 수업 늘어
메르스의 여파로 휴업하는 유치원과 학교의 수는 이번 주 들어 대폭 감소했지만, 학부모의 불안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지난 3일 학부모의 요청에 따라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에 대한 휴업을 결정했다. 이후 학교장에게 휴업 판단을 맡기자 5일에는 휴업한 학교가 100개교로 늘어났다.
한산한명동거리(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늘어나자 강남·서초구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126곳이 추가로 휴업하기도 했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의 휴업 자제 권고에 따라 시교육청은 일괄휴업 조치를 해제하고, 15일부터 휴업 여부를 학교의 자율판단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15일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휴업 중인 유치원과 학교는 475곳이다. 12일 2천903곳의 16.4% 수준으로 줄었다.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함모(36)씨는 "학교에 아이들 다 마스크는 쓰고 가지만 가서는 벗는지 어떻게 알 수 없다"라며 "하루 이틀 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우선 학교를 믿고 보내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걱정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일부 학원이 메르스 여파로 휴강했다. 대신 온라인 수업 활발히 진행되면서 인터넷 강의 동영상의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다.
◇ 메르스 환자 병원 '초토화'…관련 없는 병원도 피해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거쳐 간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자 이에 해당하는 대형병원들은 외래환자 감소, 예약 취소 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여파로 부분 폐쇄함에 따라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던 환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옮기는 '엑소더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곳이 아닌 병원도 메르스 감염 우려 때문에 외래 환자의 수가 뚝 떨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평소 외래환자와 문병 온 사람들로 붐비던 서울대병원 본관과 암병동 로비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제외하고는 오가는 사람 수가 줄어들었다.
출입구마다 발열 환자는 별도로 마련된 '의심환자진료구역'으로 이동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드나드는 환자들도 감염 우려 때문에 문을 손으로 잡는 대신 몸으로 밀어 열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평일 기준 일일 8천명 선이던 외래환자가 이달 들어서는 6천명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대전 소재 을지대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와 때아닌 홍역을 치렀던 서울 노원구 소재 을지병원의 외래 환자 수도 급감했다.
을지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발병 이전과 비교하면 외래환자가 25% 정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