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정부 시행령 등 ‘행정 입법’에 대해 국회가 과도하게 입법권을 행사하는 건 입법·사법·행정부의 권한을 분립시켜 놓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김성우 홍보수석도 “정치권이 행정입법 내용을 심사하고 변경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국회가 시행령의 내용을 바로잡으려 하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헌법과 법률 간 충돌로 인해 혼란이 초래된다. 헌법엔 ‘대통령은 법률에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75조)는 조항과 ‘국무총리 또는 행정 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95조)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한다면 입법부가 행정부의 고유권한까지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 과도한 권한 행사이고, 입법권 남용이다.
처리 과정도 문제다. 국회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부대조건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끼워넣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고치지 않으면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버티는 야당의 ‘연계 전술’에 새누리당이 백기를 들어 벌어진 일이다.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면 별도의 논의기구를 통해 처리할 일이지 국민이 잠든 새벽에 ‘끼워팔기’로 졸속처리할 일인지 묻고 싶다.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행정부가 모법(母法)의 정신과 취지를 뛰어넘는 시행령으로 법 취지를 거스르거나 행정 권한을 교묘하게 강화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규제 완화가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차분한 논의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게 성숙된 국회의 모습이다. 그러려면 위헌 논란이 있는 국회법 개정안부터 철회하는 게 순리다.
중앙일보 핫클릭
▶ [스파이더] '공공의 적' IS, 세계를 피로 물들이다
스페셜링크AD
한국일보국회가 어제 새벽 국회법을 개정, 국회가 행정입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청와대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치권에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김성우 홍보수석 은 개정 국회법 관련 조항이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3권 분립에 기초한 입법기구로서 개정안을 정부로 송부하기에 앞서 다시 면밀히 검토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김 수석은 또 “여러 가능성을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반발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앞둔 막바지 협상에서 야당의 연계요구에 응한 여당을 겨냥한 색채가 짙다. 이에 대해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모든 행정입법이 대상이 아니라 법률 취지와 내용에 어긋나는 경우만 해당하고, 시정 요구도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을 못하게 된다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라고 반박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당ㆍ청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의 개정 국회법 98조 3항은‘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는 중앙행정기관에 수정ㆍ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이를 처리해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회가 시행령과 명령, 규칙 등 행정입법의 수정ㆍ변경 권한을 갖는다는 것과 다름없다. 1997년 1월 15대 국회가 행정입법 국회제출 제도를 도입한 이래 국회는 행정입법 통제권을 확대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그러다 이번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싼 여야 줄다리기 과정에서 국회의 ‘수정ㆍ변경 요구’ 권한은 물론 이고 행정부의 ‘처리ㆍ결과 보고’ 의무까지 도입했다. 이대로라면 위헌 소지나 입법권의 과잉 확대에 대한 우려가 청와대만의 것이기 어렵다.
헌법상 명령ㆍ규칙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대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시행령 등의 법률위반 여부를 국회가 우선 판단하도록 한 개정 국회법 조항은 행정부의 행정입법권에 앞서 법원의 심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위헌 소지가 거론되는 것도 우선 이 대목이다. 국회가 좀더 면밀히 검토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나 권한쟁의 심판 등의 후속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청와대와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헌법은 입법ㆍ사법ㆍ행정권의 분립과 상호 견제의 원리를 조화시키고 있지, 절대적 삼권분립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 또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정 요구에 즉각 확답하지 않은 ‘정부의 태만’이 이번 국회법 개정의 직접적 계기였음을 청와대가 뒤늦게라도 자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