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公團/연금

공무원 연금 손은 봐야 하겠지만

그랜드k 2014. 10. 31. 07:58

국가재정 발목 잡는다니 더는 늦출 수 없는 개혁

그래도 앞뒤 재가며 꼼꼼히 추진해야 뒤탈 없다

 

 

흔히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식이랄까,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이해 관계를 쾌도난마로 쳐내기보다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압박해 가면서 점진적으로 푸는 게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부가 들고 나온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마찬가지다. 평지돌출한 이 어젠다를 지켜보는 국민의 생각은 대충 두 가지인 듯싶다. "웬일로 박근혜 정권이 이 난제를 들고 나왔을까.", "지금은 서슬이 시퍼렇지만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의 속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집권 2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데 따른 초조감일 터다. 역대 정권에선 중요한 정책이나 개혁은 집권 초에 골격을 드러내 2년 차에 본격 시행돼 온 게 상례다. 그런데 아직 박근혜 정권의 브랜드 사업이랄만한 게 없다.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무능, 인사 파행,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의 골만 확인되지 않았던가. 경제 살리기도 녹록잖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고 해서 꺼내든 카드가 '공무원연금 개혁'이 아니겠는가. 국민연금에 비해 공무원연금이 훨씬 특혜적이라고 몰아가면, 불공평한 건 눈 뜨고 못 보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테고 역대 정권이 손 못댄 난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할 수도 있을 게다. 게다가 현 대통령 임기 중엔 더는 큰 선거도 없지 않은가.

고사 하나가 떠오른다. 중국 송(宋) 후기의 '신법·구법당'의 당쟁. 송 왕조는 건국 100년이 지나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다. 끊임없는 외침에 대지주와 상업자본가의 발호로 농민과 소상인들이 몰락해 국가 경제가 흔들렸던 것. 125만 명에 이르는 군대 유지비가 국가 예산의 8할을 차지했다. 실은 빈민이나 재해민을 군적에 올리는 대신 생계비를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군대가 사회보장제도로 이용됐던 것. 잦은 과거로 관료가 급증해 녹봉 지출이 재정 적자를 가중시켰다. 게다가 대지주, 관료들의 토지 확장으로 농민들이 유랑 다니느라 세수마저 고갈됐던 것.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신종 때의 왕안석(王安石·1021~1086). 개혁 사령관이 된 그는 신법을 만들어 강력하게 시행했다. 소농민·상인에게 저리 융자를 주고 농민을 민병화해 군사비 절약에 나섰다. 대지주가 징수하던, 수리시설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사용료를 막았다. 고리대를 받지 못하게 된 데다 수세 수입마저 막힌 대지주, 대상인, 관료 계급의 저항이 엄청났다. 신종이 죽자 구법당이 득세해 신법이 전면 폐지됐다가 다시 신법당이 득세하면서 당쟁이 격심해졌고 결국 송을 멸망으로 이끈 원인이 되고 말았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고전적인 사례인 셈이다. 하고 보면 송말과 지금 우리의 처지에 비슷한 대목이 없지도 않다. 올해만도 국가 예산의 10%인 35조7000억 원을 국방에 퍼부은 터에 전시작전권 회수는 무기한 연기됐다. 미국이 곧 자국산 무기 도입 등등 청구서를 보내 올 게다. 재벌이 온갖 업종을 싹쓸이해 골목 자영업자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각종 연금의 적자 누증이 재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까지.

다른 예산을 아껴서라도 연금 제도를 계속 발전시켜야지 깎고 줄이는 하향평준화로 가서야 되겠느냐는 씁쓸함도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연금이 재정 적자를 누증시키는 원흉이라니 손을 보지 않을 도리는 없겠다.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야 한다면 이번 정권이 시도하겠다는데 훼방 놓을 일도 아니다. 공무원들도 무조건 반발할 게 아니라 국민 일반의 정서를 살피기도 해야 하겠다. 국민연금이 더 내고 덜 받는, 그리고 지급 시기를 늦추는 방향으로 바뀐 터에 공무원만 무풍지대에 안주할 수는 없잖은가.

하지만 걱정은 있다. 정부의 '연금개혁 드라이브'가 지나치게 졸속적이지 않나 하는 것. 연금 개혁 소리가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새누리당이 뚝딱뚝딱 개혁안을 만들어 법안 제출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대통령은 연말까지는 확정돼야 한다고 연일 압박을 가한다.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질질 끌면 저항에 부닥쳐 용두사미가 되기 십상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손바람을 내다가 여론 수렴이나 개혁안의 타당성 검증이 소홀하지 않나 하는 걱정은 어쩔 수 없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더라고 너무 서두르면 탈나기 쉽다.

당장 공무원 노조가 '100만 총궐기'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자당안이 졸속이란 비판이 나온다. 2014~2080년 공무원연금 적자에 대한 정부 보전분이 연평균 14조4000억 원에서 12조9000억 원으로 연간 1조5000억 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퇴직수당을 민간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데 연간 5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지금보다 오히려 3조5000억 원이 더 든다는 거다. 사실이라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다. 얼마나 졸속이었기에 이럴까. 연금 삭감이 고액 수령자가 아니라 하급직에 집중된 것도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혁의 추동력은 정당성과 설득력에 있다. 균형과 속도 조절도 관건이다. 인내 역시 필요하다. 한 방에 나무를 찍어넘기려고 어깨에 너무 힘을 주면 도끼날이 튕겨나온다. 왕안석의 개혁이 실패한 것도 성급함 때문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진단이다. 하다 못해 정부와 국회, 공무원노조, 재정 전문가들이 공청회라도 열어야 하지 않나. 최소한의 절차마저 생략돼선 저항을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아무렴 이것도 국가 백년대계가 아닌가. 사학연금, 군인연금도 함께 손볼 일이다.

정부도 돈줄 막히면 연금을 쌈짓돈처럼 '땡겨다' 쓰는 버릇 좀 고쳐야 한다. 연금공단이 돈 굴린답시고 아무 데나 투자했다가 손해보지 않도록 관리 감독도 제대로 해야 한다. 하나만 더. 전직 대통령들은 연금으로 현직 봉급의 90%, 매달 1400만 원 쯤 받는다. 18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이라면 단 한 번뿐이었어도 월 120만 원이다. 국민이 수십 년 꼬박꼬박 부어야 받는 액수를 자기 돈 한푼도 적립 않으면서 받아간다. 국민과 공무원의 희생을 요구하겠다면 자기네 연금부터 깎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