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기타/경제메모

[신용사회의 敵들] [3] 줄줄 새는 개인정보… 작년에 발급된 최신 카드 정보까지 팔린다

그랜드k 2014. 1. 25. 09:07

개인정보 유출 일상화… 위협받는 신용사회]

본지 입수 개인정보 유통 경위, 카드사들 명확하게 설명 못해
결제승인 대행사·가맹점 등서 대규모 정보 유출 가능성 의심
은행지점 직원이 정보 판매 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까지…
대기업 社內 정보망도 구멍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등 3개 카드뿐 아니라 국내 주요 10개 카드사의 고객 신용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등 개인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신용사회 한국'에 경보등이 켜졌다. 전문가들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이처럼 광범위하게 개인 정보가 유출·거래되고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신용 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카드사들, 밴사·가맹점 의심하지만…

카드사들은 개인 정보 유출 경로로 밴(VAN)사(결제 승인 대행업체)와 신용카드 가맹점들을 의심하고 있다. 밴사는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카드를 결제하면 해당 정보를 카드사로 전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업체다. 이런 밴사와 가맹점들은 소비자의 카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밴사나 가맹점들이 해킹을 당했거나 해당 업체 직원들의 잘못으로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로 국민적인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카드 고객센터에 카드 해지를 위해 몰려든 고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로 국민적인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카드 고객센터에 카드 해지를 위해 몰려든 고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종찬 기자
실제 유출 사고도 났다. 최근 밴사를 해킹해 신용카드 100여장의 정보를 취득한 뒤 위조 신용카드를 만들어 3억여원어치 물건을 구입한 일당이 적발된 적이 있다. 카드사들은 이에 대해 해킹 조직이 스스로 위조 카드를 만들어 활용하면서 신용 정보 판매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지 입수 정보가 이런 해킹에 의한 것인지는 카드사나 당국 어느 쪽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카드사 본사에서 직접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출 모집인 A씨는 "카드사 본점은 물론 지역별 카드센터 직원들도 정보를 갖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빼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객 금융 정보가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 직원부터 대기업까지 전방위 유출 실태

카드사의 정보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의 광범위한 금융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3일 한 개인 정보 판매 브로커로부터 보험사의 보험상품 정보 등이 담긴 고객 정보 600여건을 확보하기도 했다. 대출 모집인 B씨는 "금융회사 직원들은 브로커를 통하거나 직접 대출 모집인을 만나 고객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브로커로 활동하는 사람 중엔 대출 모집인이나 대출 상담사 출신이 많고 시중 은행 출신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유출은 금융사 본사 차원에서 대단위로 정보가 빠져나오는 경우뿐 아니라 은행 지점 단위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지점 직원이 자기 지점 고객 정보를 빼내 브로커에게 판매하고, 한 번 거래를 트고 난 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정기(定期) 거래하는 사례까지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가족이나 지인(知人)을 이용해 대기업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 개인 정보를 빼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대리운전 업체들이 신용 정보 수집과 유통에서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이름, 주소, 차종 등 정보를 정리해 판매하거나, 반대로 개인 신용 정보를 구매해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정보 유출된 3사 이외 고객들, "최신 카드까지 다 새 나가다니…"

24일 본지가 확보한 카드사들의 고객 정보는 유효기간(카드 만료일)이 2015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다양했다. 지난해 만들어진 최신 카드로부터 4년 전 만들어진 카드까지 다양한 정보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음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된 카드사 고객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씨티카드 사용자 정모(42·인천 계양구)씨는 "그동안 문제가 된 3개사 카드를 쓰지 않아 안심했는데 발등을 찍힌 기분"이라며 "이제 카드를 바꿔야 할지 말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나카드 사용자 박모(36·서울 동대문구)씨는 "지난 7월에 이사했는데 예전 주소가 정확하게 나와 벌거벗겨진 기분"이라며 "어디가 안전할지 지금으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