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종=연합뉴스) 이상원 서미숙 박용주 기자 = 정부가 17일 전세 과세를 전격 철회하기로 여당과 합의한 이면에는 시장의 압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두 번째 수정한 이후에도 시장 반응이 좋지 않고 2주택 전세 소득에 과세해도 조세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확산하자 빠른 법 통과를 위해 여당 요구에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인다.
◇ 3차례 고친 끝에 전세과세 결국 '폐기'
여당에서 의원 입법으로 제출할 예정인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 2월 발표한 주택 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을 3차례 고친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가 마련한 임대차선진화 방안은 2주택 이하로 연간 임대소득이 2천만원 이하인 소규모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세방식을 소득세와 분리해 단일세율(14%)로 부과하는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고소득이거나 임대용 주택을 여러채 보유한 부유층에게는 적용되지 않지만 달랑 집 한두 채를 월세로 놓아 생활하는 은퇴자 등 생계형 임대사업자로서는 소득내역이 드러나고 세율이 종전 6%에서 14%로 높아져 시장반응이 급랭했다.
과거에 낸 월세를 소급해서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사업자에게는 '날벼락같은 뉴스'였다.
정부는 이런 시장 반응을 감안해 3월 5일 보완 대책을 냈다. 2주택 보유자로 주택임대소득이 연 2천만원 이하인 집주인에게는 과세 시점을 2016년부터로 2년 유예하고 영세 임대자의 과거분 소득과 앞으로 2년 분에 대해서는 납세 여부를 따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주택자의 전세 임대도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새로 제시했지만 다시 한번 시장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6월 13일 당정협의를 열고 2차 보완대책을 냈음에도, 전세 과세에 대해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여당 일부 의원들이 전세 과세 방침 철회를 요구한 가운데 정부는 과세 원칙을 존중하면서 세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결국 6월 임시국회의 회기가 이날로 종료되면서 입법 지연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전세 소득에 대한 과세를 포기하면서 상반기 중 이어진 전세 과세안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 정부, 과세원칙 고수에서 시장 압박에 백기
정부는 지난 달 당정 협의에서 전세 소득에 대한 과세 원칙을 포기할 수 없고 대신 세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선에서 여당과 합의했다.
시장은 전세 과세 원칙을 유지한다는 정부의 태도에 일찌감치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세가 임대인의 수입이라기보다는 무이자 차입금, 즉 부채라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리였다.
또 정부가 이미 발표한 2주택자 전세소득 과세 방안이 세 부담을 최소화한 수준이어서 부담을 더 줄이면 조세 수입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신 다주택자의 80% 이상이 2주택자여서 2주택자가 비과세 혜택을 받으면 부동산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시장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계속 나오자 여당은 7·30 재보선을 앞두고 2주택 전세 소득에 대한 과세방침 철회하자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정부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전세 과세 방침을 철회하면서 주택 임대 소득과 관련해 수차례 변경된 정책에 대한 비난은 물론 월세 소득 과세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 시장, 환영 분위기…주택 구입 여지
정부가 2주택 전세과세를 철회한 것에 대해 부동산 시장에서는 '악재가 하나 걷혔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2주택 보유자의 절반이 전세를 놓는데 정부가 2주택자의 전세보증금에도 과세 방침을 밝히면서 시장에서 느끼는 거부감이 컸다"며 "임대소득 과세를 아예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1주택자 가운데 집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도록 여지는 생겼다"고 평가했다.
함 센터장은 "연초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이 2·26대책과 그 뒤에 나온 2주택 전세과세 방침으로 침체로 돌아섰다"며 "최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방침과 맞물려 이번 2주택 전세과세 철회가 시장에 안도감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도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방침으로 다주택 보유자들이 주택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고, 추가 구입을 망설였던 게 사실"이라며 "2주택 전세과세를 철회함에 따라 일부는 주택 구입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팀장은 그러나 "임대소득에 대한 정부의 과세 방침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집을 구매해 임대사업을 하려는 수요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업계는 2주택 전세과세가 철회되면서 월세 수입이 있는 2주택자 가운데 일부는 임대소득 과세를 피하기 위해 월세를 전세로 돌리는 경우도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실장은 "정부가 시장 분위기를 무시한 대책을 내놨다가 결국 철회하면서 시장 회복 시기만 늦춰진 꼴이 됐다"며 "충분한 검토없이 나온 설익은 대책은 시장에 득보다 실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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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전격 합의
'전세→월세' 전환에 역행
부동산정책 '누더기' 전락[ 주용석 기자 ] 정부와 새누리당이 논란이 됐던 2주택자 전세 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세 소득은 지금처럼 3주택자 이상만 과세 대상으로 남게 됐다. 부동산시장을 살린다는 명분이지만 그동안 월세 소득 과세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2주택자 전세 소득에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던 세제 원칙은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부동산시장 흐름에 맞춰 값싼 월세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도 엉망이 됐다. 집주인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월세를 대거 전세로 돌릴 경우 월세가 뛰어 월세 세입자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17일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를 철회하기로 여당과 합의했다”며 “시장에 내놓은 임대시장 정책을 빨리 입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전세로 대거 전환, 월세 더 오를 수도"2주택자 전세 소득에 과세하는 게 과세원칙상 맞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여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취임도 정부가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 원칙을 포기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전 부총리가 공평과세 원칙을 강조한 것과 달리 최 부총리는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살리기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정한 과세 원칙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세금이 있는 곳에 소득이 있다’는 원칙과 ‘전·월세 간 과세 형평성’을 내세워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실제로 현재 월세 소득은 주택 수에 상관없이 과세 대상이다. 2주택자나 3주택자 이상은 물론 1주택자도 주택의 기준시가가 9억원을 넘으면 월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반면 전세 소득은 현재 3주택자 이상만 과세 대상이다. 예컨대 같은 집이라도 2주택자가 월세를 놓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 반면 전세 소득자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 같은 이유로 시장에선 집주인들이 세금을 피해 월세를 전세로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지난 3월5일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 방안을 내놨다. 앞서 2월26일 발표한 ‘임대시장 선진화 방안’의 보완책으로 나온 이 대책은 2주택자의 경우 월세 소득자든, 전세 소득자든 14% 단일세율(분리과세)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1주택자 전세 소득자는 실수요자란 점에서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는 분리과세가 최고 38%의 세율이 적용되는 종합소득과세보다 유리하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월세 소득의 경우 그동안 법으로는 세금을 내게 돼 있었지만 실제 세금을 내는 집주인이 적어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정부 설명이 먹혀들지 않은 데다 주택을 두 채 갖고 있으면서 전세를 놓은 집주인들은 갑자기 내지 않던 세금을 내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다주택자의 84%(115만4000명)에 달하는 2주택자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그러자 정부·여당은 지난달 13일 당정협의를 갖고 월세 소득에 대해선 주택 수에 상관없이 분리과세 혜택을 주고 과세 시기도 당초 2016년에서 2017년으로 1년 더 연장하는 보완책을 내놨지만 전세 소득 과세엔 이견만 드러냈다. 하지만 여당이 끝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자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결과만 놓고봐도 임대소득 과세는 2·26대책→3·5보완→6·13보완→7·17보완 등 네 번이나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누더기로 전락했다. 지난해 8월 세법 개정안 번복 파동에 이어 또다시 여론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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