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기타/경제메모

예금 고객을 ‘호구’로 여기는 은행들

그랜드k 2023. 2. 16. 06:55

[경제포커스] 예금 고객을 ‘호구’로 여기는 은행들

4대 은행 작년 이자차익 33조
정부 시장금리 억누르자
은행들 예금금리 대폭 깎아
직원·주주만 우대, 예금자 홀대

입력 2023.02.16 03:00
 
 
 
8
 
 
지난해 12월부터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일제히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1월 중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음에도 예금금리는 1%포인트 이상 내려갔다. 과다한 성과급, 명퇴금 잔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배당 확대 등 주주 이익 환원과 튀르키에 성금 등 이미지 개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예금자 홀대는 여전하다. 낮은 예금금리에 지친 예금자들이 주식, 회사채 등 위험자산 투자로 떠밀려 가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은 보험사를 좋아한다. 보험사를 여럿 인수해 ‘종잣돈’ 금고로 활용하고 있다. 보험사의 사업 모델은 사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험료를 받은 뒤, 사고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먼저 받아 금고에 둔 현금(float·책임준비금)은 보험사 맘대로 굴릴 수 있는 공짜 돈이다. 버핏은 이 돈을 그룹의 ‘핵심 성장 엔진’이라고 했다. 만약 버핏이 한국 금융시장을 본다면 한국 은행들도 괜찮은 종잣돈 저수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국내 은행들이 저금리 예금 덕에 막대한 이자 차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도 못 본 척하고 있으니 ‘금리 장사’ 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요즘 국내 은행들은 정부의 대출금리 인상 억제 주문을 악용해 대출금리 상승 압력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예금 금리를 후려치고 있다. 작년 12월 이후 은행들은 서로 짠 듯 일제히 예금 금리를 내렸다. 1월 중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는데도 은행 예금 금리는 1%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급기야 만기 1년 정기예금 평균금리(3.4%)가 초단기 금리인 한은 기준금리(연 3.5%)보다 낮아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은행들은 “금리 인상이 곧 끝날 것이란 기대감에 시장 금리가 내린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 후 금융 당국이 채권시장을 밀착 관리하고 있어 현재의 금리 상황을 정상적인 시장금리라고 보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시장금리 하락세를 반영한 것이라면 대출 금리도 그만큼 내려야 할 텐데, 늘 그렇듯 대출금리 하락 속도는 더디다. 현재 은행 주택대출 금리 상단은 연 6%대이다. 3%대 이자를 주고 조달한 자금을 6% 대출로 굴리면 3%포인트에 가까운 이자마진을 갖는다.

금리 상승 덕에 4대 은행들은 지난해 33조원의 이자수익을 얻었다. 1년 전보다 5조7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은행들은 이 돈으로 성과급, 명퇴금 잔치를 벌이고 있다. 보다 못한 대통령이 ‘국민 위화감’을 지적할 지경이 됐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은행들은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늘리겠다고 말한다. 반면 예금 고객에 대해선 푸대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금자들은 떠밀리다시피 주식, 회사채 등 위험자산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경제 시스템에서 은행의 기본 역할은 가계 저축을 투자로 연결해 경제성장을 돕는 것이다. 성장성·수익성 좋은 기업을 선별해 투자금, 운영자금을 빌려주고, 그 과실을 예금자들과 공유하는 게 은행의 존재 의미다. 국내 은행은 어떤가. 하나같이 주택 대출에 매달려 부동산 버블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 ‘미친 집값’의 주범은 엉터리 부동산 정책이지만, 부동산 시장에 끊임없이 자금을 공급한 은행이 공범 역할을 했다. 국민 눈총이 따가워지자 은행들은 기초생활수급자 난방비 지원, 튀르키예 지진 성금 등 이미지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보여주기 쇼보다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은행 고객들은 은행이 자산관리 파트너가 돼 주길 원한다. 고객을 봉 취급하는 은행을 어떻게 신뢰하고 노후자금을 맡길 수 있나. 예금자 홀대는 장기적으로 자충수가 될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미국이 금리를 더 올려 1.25%포인트인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져도 정부의 인위적 금리 누르기가 가능할 것이냐는 점이다. 1월 중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채권을 팔아 53억달러(6조7000억원)를 빼간 점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더 심화되면 외국인 투자금 탈출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 왜곡은 결국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