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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법원 기능 부전… 엉망인 채로 후대 남겨선 안 돼”

그랜드k 2023. 8. 28. 06:52

이균용 “법원 기능 부전… 엉망인 채로 후대 남겨선 안 돼”

양은경 기자입력 2023. 8. 28. 03:04
 
대법원장 후보자의 사법 철학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29일부터 국회 인사 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 근처 사무실에 출근할 예정이다. 그동안 이 후보자는 친분이 있는 법조인들에게 “지금 법원은 이대로 두면 우리 자식들에게 진짜 엉망인 법원을 남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자리 잡은 ‘재판 지체’ ‘정치·이념 편향 판결’ 등 문제에 대해 “여러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픽=김의균

◇“재판 지체 해결에 에너지 투입”

이 후보자는 오래 알고 지낸 한 법조인에게 “우리 사법부는 ‘재판 지체’로 ‘기능 부전(不全·온전하지 않음)’에 빠져 있다”면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이후 6년 만에 민사 1심 사건 처리 기간이 127일이나 길어지는 등 재판 지체가 심각한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재판 지체 해소를 위한 구체적 방안도 밝혔다고 한다. “재판에 어느 정도 에너지가 투입돼야 하는지를 계산해서 그만큼 인풋(input·투입)해야 한다. 일주일에 재판을 몇 번 하고, 판결 선고를 몇 건 해야 재판 지체가 없어질 수 있는지 ‘직무 분석’을 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이 후보자는 “직무 분석에서 현재 판사 수로는 예컨대 일주일에 4건만 선고할 수 있다고 나오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예컨대 일주일에 판결 6건을 쓰지 않으면 재판 지체가 생긴다면 최대한 그 목표에 가깝게 판결을 하면서 국회에 판사를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고 한다.

또 이 후보자는 “역대 대법원장들은 어떻게 하면 재판 지체를 막을까를 고민해 왔는데 (김 대법원장 체제이던) 지난 6년간 그 기능이 사라졌다”며 “판사들이 최선을 다해도 재판 지체가 일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신속한 재판이 되도록) 판사들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23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이 후보자는 주변 법조인들에게 "지금 법원을 이대로 두면 우리 자식들에게 진짜 엉망인 법원을 남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원장 추천제, 이대로 둘 수 없어”

재판 지체의 주요 원인으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꼽힌다. 과거에는 대법원장이 재판과 행정 능력이 있는 판사를 법원장에 임명했는데 김 대법원장은 지방법원 판사들이 추천한 판사를 법원장에 보내기 시작했다. 한 법원장은 “재판 지체를 일으키는 판사가 있어도 내가 법원장이 될 수 있도록 추천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둘러 재판을 하라’고 독촉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다들 문제가 많다고 하고 있다”면서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절대로 지금 이대로 할 수는 없고 어떤 형태로든 바뀌어야 한다”고 한 법조인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지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폐지’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김 대법원장이 승진 제도를 폐지하기 전에는 승진 대상 판사들은 사법시험 공부하듯이 열심히 일했고 다른 판사들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며 “(대법원장이 되면) 누가 열심히 하느냐, 누가 게을리하느냐를 정확하게 분석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치 편향 판사, 형사 재판하면 안 돼”

이 후보자는 정치·이념 편향 판사가 한쪽으로 쏠리는 판결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여러 법조인들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판사가 편향성이 있으면 형사 사건에는 잘 안 맞는다”는 말을 평소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원장이 형사 재판 담당 법관을 지정하지 않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사무분담위원회’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후보자는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김 대법원장이 사무분담위원회를 도입했지만 남부지법에서는 운용하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실력이 있고 공정한 판사가 재판을 해야 국민이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순환 보직으로 형사 재판을 맡기거나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가 원한다고 형사 재판부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