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을 정치·경제적으로 주도했던 영국이 43년 만에 EU에서 탈퇴한다.
23일(현지시간) 실시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개표 결과 382개 개표센터의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탈퇴 51.9%, 잔류 48.1%로 최종 집계됐다.
전체 등록 유권자 4650만명 중 72.2%가 참가한 가운데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EU를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1741만명이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1985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고 엔화가치는 폭등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EU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경제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투표 당일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언론과 시민, 세계 금융시장은 EU 잔류 가능성을 높게 봐 이번 선거 결과의 충격이 더욱 컸다. 앞서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23일 사전에 명단을 확보한 투표자들을 상대로 조사해 EU 잔류가 52%, EU 탈퇴가 48%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의 찰스 맥길로이(33)는 “영국 국민은 탈퇴 후 오는 혼란보다 안정적인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EU 잔류로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며 “EU 탈퇴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43년 만에 EU에서 이탈하기로 선택하면서 EU 리스본 조약에 따라 EU 이사회와 2년간 탈퇴 협상에 들어간다. 상품·서비스·자본·노동 이동의 자유는 물론 정치·국방·치안·국경 문제 등 EU 제반 규정을 놓고 새로운 관계를 협상해야한다.
EU는 사상 처음으로 회원국 이탈 상황을 맞게돼 회원국이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어든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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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이 꿈꾼 `하나의 유럽`…70년뒤 후손들은 `해체` 불붙여
유로존 재정위기·그렉시트 터지며 유로화 신뢰 추락
난민·테러 무능력도 결정타…EU시스템 메스 불가피
당장 28일 EU정상회의 "전면적인 개혁" 요구 거셀듯
◆ 브렉시트 대충격 / 브렉시트 직격탄 맞은 'EU' ◆
"유럽 대륙이 평화·안전·자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는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46년 스위스 취리히대 연단에 선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남긴 역사적인 연설 내용이다. 당시 처칠 총리는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내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럽의 단합과 통합을 호소했다. 이후 1950년 유럽통합 이상주의자였던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의 제안으로 1951년 유럽석탄철강산업공동체(ECSC),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원자력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유럽공동체 설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 세 기구는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통합됐고, EC는 1994년 1월부터 명칭을 유럽연합(EU)으로 바꿨다. 이처럼 지난 66년간 꾸준히 통합을 위해 나아가던 EU가 브렉시트(영국 EU 탈퇴)라는 사상 초유의 도전에 직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칠의 염원과는 달리 EU 탈퇴를 결정한 첫 번째 EU 회원국이 다름 아닌 영국이다. 사실 영국은 1973년 뒤늦게 EU 전신인 EC에 가입했지만 EU와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했다. 43년 전 영국이 필사적으로 EC에 가입하려 했던 배경은 경제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영국병'이라 일컬어지는 노동조합과 기업 간 반목, 유가 상승 등으로 빈사상태였다. 영국 정부는 EC 가입을 통해 유럽에 기대려 했다. 하지만 1979년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뒤 모든 문제 원인을 비대화된 EC시스템을 향해 겨눴다.
대처 총리는 "유럽연합이란 초국가를 만드는 것은 현시대에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EU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혹평을 내놨다. 브렉시트 캠프 수장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이 자주 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이 '대처의 후예'라고 불리는 이유다.
대처는 취임 이듬해인 1980년 아일랜드의 더블린 EC 정상회의에서 "내 돈을 돌려 받길 원한다"며 대놓고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 9개국이 가입해 있던 EC에서 영국은 두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었다. '경제 회생'을 내걸었던 대처 총리는 끈질기게 불만을 제기했고 결국 그때까지 영국이 냈던 분담금의 3분의 2 정도를 되돌려 받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 이유 중 하나도 연간 200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영국의 EU 분담금 문제였다.
또 1992년 EC는 EU의 창설 근거가 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발표했다. 기존 EC에 외교안보, 내무사법을 포괄하는 정치조직으로 발전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소위 '우버(Uber)화'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EU는 직면한다. 덩치가 커지면서 비대화된 EU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기 시작한 것. 유로화도 문제로 등장했다.
이후 EC는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근거해 1993년 EU를 출범시켰다. 기존에 단순한 경제공동체에서 각 회원국의 정치, 경제, 법률에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외교 공동체로 발전한 것이다. EU는 조직 내에 입법부인 유럽의회,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 공동경찰기구인 유로폴, 유럽중앙은행(ECB) 등도 갖고 있다.
2002년 1월 1일 EU의 공식화폐인 유로화가 도입됐다. 유로화는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달러화에 이은 기축통화로 이른 시간 내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그리스 디폴트,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문제가 터지면서 유로화의 내재적인 한계론이 급속히 퍼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화폐 통합만 이뤄진 상태에서 역내 회원국 간의 경상수지 격차는 확대됐고,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원국들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악순환되면서 모든 불행의 씨앗을 낳게 됐다"고 평가했다. 유로화로 인한 '경제 불평등' 문제는 국가와 국가 간뿐만 아니라 계급과 계급 간 불평등에도 불을 붙였다. 유럽 재정위기 후 독일이 의사결정권을 잡고 휘두르면서 회원국들에 긴축재정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였다.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면서 중산층 이하 서민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불만은 극도로 누적됐다. 영국 BBC방송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50대 이상의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자층 남성이 절대 다수"라며 "아울러 중소도시나 농촌엔 반대파가 상당수 많다는 것은 EU의 긴축재정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도했다.
영국뿐 아니라 회원국들이 거세게 불만을 제기하는 또 하나는 과도한 주권 침해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를 사실상 독일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 그런 EU 정책에 영국이 좌지우지되는 데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EU는 그동안 유럽긴급대응부대 창설안, 유럽헌법 마련, 유럽검찰청 설치안, 유럽사법기구 창설, 유럽형사경찰기구(유로폴) 권한 확대, 각국의 세금과 생활보호제도의 조정, 개별 회원국의 법률에 대한 EU의 거부권 행사 등 모든 분야에서 권한을 확대해 왔다.
EU 창설 작업에 참여했던 장 모네는 포브스와 인터뷰하면서 "내가 시작할 당시의 EU와 지금의 EU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군사·사법·치안·조세·입법 등 개별 국가의 주권에 해당한다고 믿었던 부분에 EU가 공공연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조치"라고 말했다. EU 시스템에 타격을 준 결정타가 된 것은 난민 문제와 2014년부터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 등에서 연달아 터진 이슬람 극단세력의 테러다. 대규모 난민 유입 사태가 일어났던 2015년 독일과 프랑스 등이 주도해 EU 회원국들에 난민을 받아들이라고 강제 배정을 하자 영국 정부는 마지못해 1만명 이상을 받기로 했고 이에 대한 영국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아울러 1985년 EU는 국경을 회원국 간 개방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의 '솅겐조약'을 발표했는데 이런 문제가 난민 유입은 물론 테러리스트들의 국내 유입까지 야기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 조약에는 EU 회원국 중 영국과 아일랜드만 빠져 있다.
이런 고질적인 EU 시스템 내부 문제가 이번 영국민들의 'EU 탈퇴' 결정으로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28일 예정된 EU지도부 정상회의가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브렉시트를 막지 못한 EU 지도부의 무능력을 질타하면서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회원국들이 폭풍처럼 쏟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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