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정권의 노선은 입법으로 구현되며 이를 선도하는 사람이 원내대표다. 그래서 원내대표는 2인자급 실행자인 것이다. 일개 조직원이라면 다른 생각을 지녀도 조직은 큰 탈이 없다. 그러나 2인자 실행자는 다르다. 그가 보스(boss)와 대립하면 조직이 어디로 가겠는가. 편집국장이 신문사의 노선과 다르게 지면을 만들면 그 신문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안에 따라 정권의 실행자나 편집국장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부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스를 따라야 한다. 그게 싫으면 조직을 나오거나 자리를 던져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산다. 개인보다 중요한 게 조직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 맡아서는 안 될 자리를 맡았다. 그는 애당초 원내대표에 출마하지 말았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뽑은 의원들은 뭔가.” 뽑히는 것과 뽑힌 후에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그를 뽑을 때 많은 의원은 그가 대통령과 이렇게 충돌할 줄 몰랐을 것이다.
지난 1월 그가 원내대표에 출마했을 때 나는 우려했다. 그에게 ‘충돌적인 사고체계’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4년 전인 2011년 6월 그는 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최고위원이 됐다. 그런데 출마 선언문이 매우 과격했다. 가진 자, 재벌, 4대강 사업을 매도했다. 비판이 아니라 매도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재벌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당시 ‘과격한 당권후보 유승민’이라는 칼럼으로 그를 비판했다. “경제학자라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부자·기업이 돈을 버는 게 관련이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대기업·부자가 잘돼야 공동체가 커지고 서민·약자의 생활도 나아진다는 걸 그는 배웠을 것이다.”
유 의원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했다. 주류 경제학자인 것이다. 부(富)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노무현 대통령처럼 사회를 2대 8로 나누었다. 2015년 그의 신고재산은 35억원이 넘는다. 아파트 2채에다 콘도·골프장 회원권도 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돈을 주체할 수 없어’ 그것들을 사들였나. 개발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4대강을 그는 심하게 공격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11조원짜리 동남권 신공항은 찬성했다. 국가보다 자기 선거가 중요한가.
그가 원내대표가 된 후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그는 ‘유승민 철학’을 설파했다. 그는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 4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사회를 2대 8로 나눈 것이다. 그는 대통령과 당의 주요 정책을 공격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그는 영·유아 보육 지원, 창조경제, 그리고 경기부양책도 비판했다.
정책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실제로 적잖은 여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이견(異見)을 말한다. 하지만 원내대표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이견은 내부 회의에서 조율하고 대외적으로는 ‘집권세력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그게 원내대표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흔들린다. 조직을 해치는 2인자를 보스가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이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이렇게 연설했다 치자. “당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2년 반이나 인정하지 않은 건 잘못입니다. 그리고 NLL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야당 지도부가 그와 같이 갈 수 있을까.
삼권분립으로 보면 대통령과 국회 지도자는 대등한 관계다. 하지만 집권당 조직으로 보면 대통령과 원내대표는 엄연히 상하관계다. 가정에 비유하면 대통령은 아버지, 당대표는 어머니, 원내대표는 장남 또는 장녀다. 장남이나 장녀가 아버지와 생각이 다르다고 가족회의도 없이 집 밖에 나가 동네사람들 앞에서 아버지를 공격하면 그 집안은 뭐가 되는가. 유승민은 원내대표가 아니라 평범한 의원으로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꿈을 꾸었는지 궤도를 벗어났다. 그게 비극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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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의 시사讀說]유승민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5-07-02 03:00:00 수정 2015-07-02 03:00:00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로 초래된 사태를 박근혜 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개인적 관계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흐린다. 물론 박 대통령이 간단히 ‘노’라고 하면 될 것을 ‘배신의 정치’ 운운한 결과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누구를 배신자로 지목했건 그것은 새누리당 내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두 권력, 즉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균형이 깨질 뻔했고 그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제왕처럼 노기를 부렸지만 제왕이 아니었다. 여당 내 소수파에 불과한 친박 의원들만으로는 유승민을 강제 사퇴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유승민은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다. 다만 그가 밀리는 것은 정당성 싸움이다. 비박도 그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옳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유승민은 국회법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으며 위헌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럼으로써 이미 있는 권고 규정을 왜 개정하느냐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는 강제성 논란이 계속되자 ‘요구’를 ‘요청’으로 딱 한 글자 고쳐놓고는 남은 우려마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속일 수 있는 원숭이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야권에서는 강제성이 있다고 위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왔다.
유승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됨에도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이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다시 통과시킬 책임도 그에게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재의 표결에 불참하기로 했다. 유승민은 재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표를 얻는다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원총회는 그런 길을 막아버리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받아들였다. 유승민은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것이다. 의원총회가 그의 강제 사퇴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이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모자란 사람이다.
유승민은 속으로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야당이 원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으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하에서는 때로 대통령 거부권까지 감수하고 야당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법은 법률이지만 그중에 헌법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닌 규정이 적지 않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규정이 그렇고 이번 개정안도 그렇다. 원내대표 정도 되는 국회 지도자라면 국회법의 어느 규정이 그런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해서는 아무런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연계처리 법안으로 받아들일 게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 국회의 행정입법 강제 규정은 설혹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법안에 연계하는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 정도 식견이 없다면 원내대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더 위험한 일에 개입되기 전에 그를 사퇴시켜야 한다.
주역에 야윈 돼지가 뛰려고 하는 모양의 괘가 있다. 야윈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엉망으로 만들려는 순간에 그 돼지를 제지한 것이 이번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본질이다. 그 야윈 돼지가 꼭 유승민이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제지했어야 한다. 제때 제지하지 못할 때 어떤 혼란이 벌어지는가는 국회선진화법이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